2020. 1. 26. 06:23ㆍ나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광주정씨청백리공파(2020.1.26.일)
광주정씨는 고려 말 삼중대광 문하찬성사를 지내신 신호 공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전국 각지에 약 2만 여명의 일가가 살고 있지만 한 집안이면서 光州와 光山으로 본관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세거지인 광주가 武珍州에서 광산이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선영에서 바라본 안성시서운면오촌리 전경
조선조의 대성들 중 광주의 옛 지명인 광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가 여럿 있는데 우리 문중 일부에서도 이에 따라 광산정씨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조의 모든 문헌이 우리 광주정씨를 光州人으로 한 것이나 한때 광산이었을 지라도 광주로 환원된 지금 광주정씨라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싶다.
광주정씨청백리공파세보입석
광주정씨청백리공파 터전 표시석
광주정씨 세보를 살펴보면 시조되시는 신호 공께서 2세 윤부 공과 윤형 공 두 분을 두시었는데 그중 윤부 공은 인진과 구진 공을 그리고 윤형공은 구당 공을 둔다. 이 세분에 의해 광주정씨는 3세부터 인진공의 완백공종과 구진공의 동백공종 그리고 구당공의 판서공종으로 갈리게 된다.
광주정씨의 큰 줄기 완백공종과 판서공종은 차치하고 본인이 속한 계보인 동백공종의 청백리공파 직계만을 들여다본다. 그러나 입문부터 답답한 것은 시조 이상 선조의 흔적이 타 문중 문헌 속에 간혹 비치고는 있지만 그에 대해 정확한 상고가 어렵다는 것이다.
시조께서는 고려시대 봉은사 진전직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사후 삼중대광 문하찬성사로 추봉되었다고 하는바 사헌부 대사헌일 때는 왕도 무서워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광주정씨 신호 공 이상의 선조에 대한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남겨진 숙제일 수밖에 없다.
2세 윤부 공은 개성부윤을 하시었고 왕을 대신하여 체찰사로 나주에서 영산창 축조를 한 기록이 있다. 3세 구진공 때 완백공종과 동백공종으로 갈리는데 동백공종 휘 구진공은 고려 성균시 장원으로 입조하여 조선조에서 이조와 예조참판 및 대제학을 하시고 외직으로 강원도 관찰사를 지내셨다.
4세 지하공은 사헌부 장령에 좌익공신으로 증 이조참의이시고 5세 되시는 계우공은 진사로 증 승정원 좌승지셨으며 6세 휘 윤공은 상의원판관이셨는데 묘소가 경기도 안성시서운면오촌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안성일대가 광주정씨 청백리공파의 새로운 터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세 휘 묵(默)공의 묘
7세 자란공은 문과급제 후 상의원별좌를 지내셨고 8세 휘 연공은 문과급제 한림원 이조좌랑 태안군수 전주부윤 청백리로서 中始祖가 되신다. 9세 응방 공은 통덕랑이요 10세 묵공은 문과급제 한림 예문관대교 이조좌랑 고산현감 천안군수 이호종공 승 첨지중추부사를 지내시었다.
19세 동지중추부사 화필공의 묘
11세 희망공은 승의부위 용양위부사용이시고 12세 어공은 어문(어門)으로 용양위부사용 13세 익성공 통덕랑 14세 온공도 통덕랑이셨다. 15세 유일공 역시 통덕랑이었으며 16세 상주공은 증 사복사정으로 상주가(尙周家)를 열었고 17세 진흠공은 증 승지였으며 18세 학수공은 증 호조참판이시었다.
19세 화필공은 고조부로서 동지중추부사를 지내셨고 20세 면훈공은 증조부로 묘소가 안성 선영 부모님 산소 바로 위에 계시다. 21세 휘 용린 공은 조부로서 묘는 강당 골에 위치해 있으며 22세 부 창석께선 증조부 산소 아래에 모와 합장되어 있는바 이로서 시조로부터의 계보가 확실하기만 하다.
할아버지 용린공의 묘
지금까지 광주정씨청백리공파의 족보에 대하여 살펴본바 최초 세거지가 光州지역이었고 그 후 분파되면서 각 파별로 여러 곳에 나누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 청백리공파 개조 되시는 연(淵)공의 조부 휘 윤공께서 경기도 안성시오촌리에 정착하므로 광주정씨청백리공파의 근거지가 되었다.
설을 맞아 할아버지와 아버지 산소 그리고 큰아버님 산소 순으로 성묘를 하는 가운데 가까이 있는 선조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비록 다른 대성들 보다 세력은 약하지만 시조로부터 700년을 이어온 유구한 역사의 광주정씨를 어찌 대단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 고리타분하게 이런 것을 알아 무엇 하겠는가 마는 그래도 근본은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변화가 급박하다보니 옛것은 무시되고 사라져 가는 가운데 내가 누구인지 조상의 근원은 무엇인지를 찾아갈 때 우리 광주정씨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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