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14. 17:47ㆍ호남정맥
호남정맥 제21구간
(湖南正脈)
무남이재∼석거리재(2017.4.11.화)
새벽녘 텐트를 때리는 요란한 빗소리에 잠이 깨었으나 막상 일어난다고 하여도 이 우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 계속 잠을 청해본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무남이재에서 석거리재까지 약15㎞가량으로 어제 산행에 비한다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부담은 없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아침 9시까지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보니 산행계획도 그 시간대로 맞추어 준비를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밤새 내리던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하더니 아침식사를 마칠 무렵이 되자 비대신 거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무남이재로 올라와 광대코재 오르는 가파른 정맥 길에 불고 있는 강풍은 거대한 풍력발전기를 돌리고도 남을 만큼 세차게 불어대고 있는 가운데 그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진달래꽃잎의 처연함이 애처롭기만 하다. 힘겹게 올라선 광대코봉에서 지나온 주월산 주능선을 바라보니 진달래꽃이 붉게 물들인 군락지와 조성들녘이 푸르기만 하다. 그리고 초암능선의 파란 하늘아래 소설 태백산맥속에 해방구였다는 율어면 산기슭에 선혈처럼 뿌려져 있는 두견화의 붉음은 아름답다기보다 한이 서려 있는 것만 같다.
정맥능선의 철쭉지대를 따라가다가 고흥지맥분기점에서 모악재로 내려온 다음에 오르게 된 존제산은 오랫동안 통제구역으로 묶여있었던 지역이라서인지 등산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 마구잡이로 자라있는 잡목과 키 작은 철쭉으로 인하여 행보가 힘들기만 하다. 해발712m의 존제산 중턱을 넘으면서 이 일대가 과거 군사시설물 지대라 그 흔적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가운데 참호위로 곱게 피어있는 진달래꽃과 녹슬어 버린 철조망은 전쟁과 평화가 어떻게 공존하여야 하는 것을 보여 준다.
주둔 중이던 군부대가 떠나간 곳임에도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유자철조망의 날카로운 가시는 걸렸다하면 여지없이 옷과 살을 찢어 놓는다. 헬기장봉에서 부대안의 도로를 따라 내려와 굳게 닫혀있는 문을 통과하기위해서는 그대로 넘어가거나 구멍 난 곳의 철망을 통하여야 하나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다 보니 그것이 어렵기만하다. 유자철망을 넘어 빽빽하게 포진하고 있는 가시넝쿨나무를 헤쳐 가며 지긋지긋한 군부대를 뼈져 나와 군사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주릿재다.
내륙인 율어면과 해안지방인 벌교를 잇는 895번 지방도로가 통과하는 고개위엔 첩첩산중이면서도 넓은 농경지의 율어면을 조망할 수가 있었고 조정래의 태백산맥문학비와 더불어 존제산 정상비가 우뚝하기만 하다. 또 이 지역 출신인 윤귀례 시인의 “주릿재 길”이란 시비에 적힌 벽지 율어에서 벌교 5일장을 보기위해 새벽녘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아흔아홉 구비길 주릿재를 넘었다는 엄니의 한이 담긴 노래는 그 절절함이 가슴시리기만 하다. 어디 이곳 주릿재에만 애환이 있겠는가? 율어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슬픈 한(恨)을 노래하는 것만 같다.
작은 주릿재로 내려와 가파른 485봉을 오르고 석거리재를 향해서 가는 길은 농장의 임도가 있었는데 멍멍이가 짖어대고 있는 정상의 가옥을 발치에 두며 잡목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종주자를 힘들게 하고 있는 구간을 빠져나오면 산행의 종착지인 석거리재이다. 오늘 산행에 있어 호남정맥이 한반도 남쪽 끝을 지나며 과거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이자 실제 이곳 보성군 벌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기득세력과 그들에 맞서다 스러져간 민중의 한과 슬픔이 이곳에 부는 바람을 통해 느낄 수가 있었던 호남정맥 20구간과 21구간 산행을 모두 마친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고 있는 무남이 고개를 출발하여
광대코재 오름길에는
강풍에 떨어진 꽃잎이 있었고
지나온 주월산을 뒤돌아보며
광대코재에 올랐습니다.
주능선에 피어있는
진달래꽃들은
억울한 삶을 살다간
민중들의
넋인 것만 같았는데
아직 개화가 되려면 멀기만 한
철쭉군락지와
조성 들판
그리고 청천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고흥지맥 분기점에서
존제산으로 방향을 틀어
천지고개로 내려온 다음에
오름길의 잡목이 성가시기만 한데
군(軍)철조망을 통과하며
묘한 조화를 이룬 곳을 지나
존제산 남쪽 통문을 통해
부대 안으로 진입을 합니다.
많은 군사시설이 이전한 진지를 활보해
굳게 닫혀있는 정문을 어렵게 통과하고는
작전용 도로를 따라
길게 내려오면
895번 지방도로가 있는
주릿재입니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언제 다시 올지 기약 없는 가운데
바람은 불고 있었습니다.
정맥과 함께하는 농장엔
수명을 다한 목련과
한창인 진달래꽃이 있었고
장해물이 된 나무를 넘어
도착한 곳은
산행 종착지 석거리재입니다.
이로써
이틀간에 걸친 종주산행을 마칩니다.
○.산행시작 : 2017.4.11 08:50
○.산행종료 : 2017.4.11. 14:50
○.산행거리 : 약15㎞
○.산행시간 : 약6시간
○.교통
-올 때-
석거리재(16:15출)∼벌교터미널(16:35착)
벌교터미널(16:40출)∼순천터미널(17:05착)
순천터미널(17:30출)∼부천터미널(22:00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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